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몰비츠 전투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1740년 5월 31일 아버지 [[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]]가 사망한 뒤 국왕이 된 프리드리히 대왕은 아버지가 즉위 내내 갈고 닦아온 군대를 활용해 프로이센을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세우겠다는 야망을 품었다. 그러던 1740년 10월 20일 오스트리아 황제 [[카를 6세]]가 사망하고 그의 딸 [[마리아 테레지아]]가 오스트리아 국왕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했다. 그러자 오스트리아의 주변국들은 여자는 왕위에 오를 수 없다는 [[살리카법]]을 근거로 삼아 오스트리아를 공격하려 했다. 이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재빨리 프랑스와 동맹을 체결한 뒤 1740년 12월 16일 전격적으로 슐레지엔을 침공했다. 그는 뮈네 강 서쪽으로 남하한 후 1741년 1월 13일 슐레지엔의 수도 브레슬라우에 입성했다. 이후 프로이센군은 1741년 3월까지 슐레지엔 남쪽 국경까지 진군하여 슐레제인 전역을 석권하기에 이른다. 한편, 마리아 테레지아는 슐레지엔을 빼앗긴 것에 분노해 빌헬름 라인하르트 폰 나이페르크 휘하의 2만 병력을 파견해 슐레지엔을 되찾게 했다. 나이페르크는 슐레지엔 국경을 넘은 뒤 프로이센군의 경계를 회피한 채 우회 기동하여 나이세의 오스트리아군 수비대와 합세하려 했다. 뒤늦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프리드리히 대왕은 군대를 집결해 나이페르크를 따라갔다. 당시 날씨는 매우 추웠고 눈바람이 심하게 몰아쳐 양측 모두에게 많은 손실을 입혔지만, 나이페르크는 프리드리히 대왕보다 한발 앞서 나이세에 먼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. 그 후 나이페르크는 프로이센 왕국과 프로이센군 사이에 위치해 적의 보급을 끊었다. 이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들을 격퇴하기로 결심하고 나이세 남쪽의 몰비츠 마을 인근에서 적과 격돌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